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스 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15세기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비판했다. 그래서 후스는 1411년 대립 교황이었던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고,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로부터 참석할 것을 요청받았다. 공의회에 참석하면 교회의 재판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후스는 처음에 가지 않으려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 [[지기스문트]]가 보호를 약속하겠다고 하여 [[콘스탄츠]]로 갔다. 하지만 [[콘스탄츠 공의회]]는 후스가 지기스문트로부터 받은 안전통행증을 무시하고, 그를 화형대에 세웠다. 그가 화형당하고 난 뒤 그의 사상을 따르는 보헤미아의 [[체코인]]들은 그가 순교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했다. 후스의 사상을 따르는 자들을 '''후스파'''라고 불렀는데, 이들 대다수는 체코인이었다. 후스파들은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써 가톨릭 교회에 저항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를 추종하는 [[바츨라프 4세]]와 [[지기스문트]] 형제는 후스파를 심하게 탄압하여 감옥에 가두거나 추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스파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후스파들은 이내 가톨릭 교리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강경파(훗날의 '''타보르파''')와 가톨릭교의 일부 교리를 수용하는 온건파('''양형파''')로 나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